어머니 일기
어머니 일기
6/5(수)
저녁4시에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갔더니 아무도 없다. 5시경에 아내가 왔고, 간단히 준비해서 6시경에 강화에 가려고 주차장에 가서 짐을 트렁크에 넣고 있는데 어머니가 오셨다. 잘들 다녀 오라고 하시며 손을 흔드신다. 이 모습이 아내한테는 건강한 모습으로 본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이야...
강화에 7시30분쯤 도착했다. 감자, 파는 씩씩하게 자라 보기가 좋은데, 고추와 가지, 토마토는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 않았다. 잔디와 화단에 풀이 자라 특히 토끼풀이 무성해 보기가 흉하다.
처형이 저녁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밭에서 따온 상추를 장에 쌓아 맛있게 먹었다.
밤 늦게 1호집 명사장 내외가 왔다. 내일 일찍이 가야하기 때문에 밤 늦게 왔단다.
6/6(목, 현충일)
아침부터 풀을 메고, 화단을 가꾸고 바쁘게 일을 했다. 그래도 표가 나지 않는다. 날씨는 아주 좋다. 내일 집사람과 처형이 여수에 가기로 해서 저녁에 가려고 했는데, 저녁에 명환이 내외가 왔다. 그래서 하루 더묵고 내일 아침에 가기로 결정했다. 어머니한테는 오늘 간다고 했었는데…
횟감이 있어서 명환이와 막걸리 한병을 먹었다.
저녁 밤하늘이 어두었지만 공기가 아주 청명한게 좋다.
6/7(금)
아침9시에 강화를 나와 목동 집으로 향했다. 운전하는 도중에 무척 잠이 쏟아진다. 처형을 당산역에 내려주고 집에 도착하니 10시30분. 어머니는 노인정에 가시고 없다. 집사람은 병원에 갔다가 12시경에 온다고 해서 나는 그때까지 피곤해서 잠을 더 자기로 하고 잤다. 12시경에 집사람이 왔는데 그때까지도 피곤이 안풀려서 간신히 일어나 녕기 여자친구가 줬다는 케익을 점심으로 먹었다. 나는 사무실을 나갈까 하다가 포기하고, 집사람과 처형의 고속버스표를 예메해주고 아내가 3시경에 떠나자 또 잠을 잤다.
4시경에 어머니가 우리가 왔는지 보고 싶다면서 들어오셨다. 우리가 들어온 걸 보고 아내가 여수로 떠난 것을 아신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할려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저녁에 저녁식사약속이 있어 곧 나가야하니 나를 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그렇다면 노인정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오겠다면서 다시 나가신다. 나는 조금 더 잠을 자고,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려는데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저녁으로 갈비탕을 먹으셨단다.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니 잘 다녀오라시며 모든게 잘 될거다. 사랑해! 라고 말씀하신다. 요즘들어 부쩍 많이 하시는 말씀이다.
하루종일 잠을 자서인지 머리가 멍하다. 충무로 복집에서 영범, 동주, 헌철 이렇게 4명이 모였다. 예전같지 않고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거 같이 안타깝다.
오늘따라 친구들이 하나같이 술들을 평소보다 많이 그리고 재미있게 마셨다. 쏘맥을 제법 마셨는데 부담이 큰거 같지 않다. 저녁을 끝내고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2잔 더 마셨다. 앞으로는 술잘먹는 우리들끼리 만나자고 하며 떠들었다. 기분이 좋다.
집에 들어오니 11시가 넘은거 같다. 어머니와 녕기가 자지않고 있다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신다. 소파에 앉아 예기를 하다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예기를 계속했다. 녕기는 내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간 제주도에서 회사 워크샵이 있어서 새벽5시에 공항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일찍 자야한다고 중간에 자리를 떴지만 잠이 안오는지 중간 중간에 나와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곤 했다. 어머니와 나는 오랜만에 장시간 예기를 했다.
나는 점심에 먹다가 남은 녕기 여자친구가 사준 케익을 꺼내서 식탁에 올려놓고 거기에 딸려있던 여자친구의 조그만 편지를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돋보기를 가져다가 그 아이가 쓴 짤막한 편지를 보면서 글씨도 예쁘고 내용도 좋다면서 아주 좋은 아이일거라면서 경사났다고 춤을 덩실덩실 추신다.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모든 것이 잘 될거라고 하시면서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갑자기 화제가 옛날로 돌아가 서울 마포에 사시던 때를 이야기하신다. 그 시절 충남 당진 촌구석에서 서울로 이사와서 살았다는게 주변에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던거 같다.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단다. 서울에 산다고…
아버지는 쌀10가마를 주고서 국민대 법학과 2학년에 편입하여 다니셨는데, 그 당시 쌀10가마면 굉장히 큰돈이었다는 예기,
6.25가 나던 당일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영이 중단되면서 나가라고 해 나와보니 이미 피난행렬이 거리에 가득했고, 논을 메다 만 반쟁이 차림으로 소를 몰고가는 사람등 대단히 어수선했다는 예기,
그래서 집으로 달려와 보니 옆집은 이미 피난을 간 상태로 마당에 빨간뾰족구두가 나둥그려 있었고, 그 집이 당시 국방장관의 집이었다는 예기.
그 때 어머니는 나를 임신한 상태여서 걸어서 피난하는데 아주 힘들었고, 게다가 정자, 영희고모를 대리고 같이 가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는데,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할아버지를 만나 기적적으로 재회하였고, 할아버지는 정자, 영희고모를 찾아서 올라오던 중이 었다는 예기.
시골집으로 피난와서 나를 낳았고 며칠있다가 아버지가 돌아오셨기 때문에 복덩이라고 좋아했다는 예기,
아버지가 학도병으로 다시 입대해서 전송하는데 합덕까지 나를 업고 갔었다는 예기, (아버지는 입대해서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서부전선에 통신병으로 투입되어 싸우시다가 휴전을 맞이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심)
아버지를 제대시키기 위해 할아버지가 쌀10가마 값을 마련해서 어머니의 고모부에게 부탁하라고해서 어머니는 나를 등에 업고 순성 친정까지 가서 고모부에게 돈을 전달하고 왔는데, 그 다음날 아버지가 제대해서 집으로 돌아와 무척 황당하고 기뻤는데, 그래서 바로 고모부한데 달려가서 돈을 돌려 달라고 했더니 이미 돈을 전달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돈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시댁으로부터 오랜기간 동안 몹시 괴로움을 받았다는 예기, 등등
그 당시에 쌀10가마를 마련해서 뇌물로 쓸 정도였으니 살림살이가 제법 컸던거 같다. 하긴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단 예기는 들어온 터이다.
갑자기 예날 예기를 재미있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생각도 나고 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났다. 왜 이러실까?라는 의문이 잠간 머리를 스쳐,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 다시 손주들앞에서 하자고 하면서 자러가자고 했다. 그때가 12시를 많이 넘긴 시간인거 같았다.
6/8(토)
오늘 결혼식이 3건이다. 12시30분에 추예식, 1시30분에 신봉재, 6시에 장광문 그래서 바쁜 하루가 될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7시에 아내한테 전화가 와서 잠을 깼고, 술기운이 남은 상태로 거실에 나가 보니 불이 환하게 켜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TV를 키고 소파에 누워있는데, 어머니가 벽을 붙잡고 기어 나오시면서 한 손으로 배를 움켜 잡으시고 배가아파 못 살겠다고 신음소리를 내신다. 놀라서 어머니를 보니 사색이다. 왜그러시냐고 물으니 새벽5시부터 구토와 설사가 나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단다. 문득 장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저녁을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으니 갈비탕을 먹었단다. 채한거 같아서 소화제와 진통제를 드렸더니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동안에도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게 이만저만 괴로운게 아닌거 같다.
시간은 8시 약국이 혹시 열었을 것 같아 약을 사러 나왔다. 역시 약국은 닫혀있었다. 주위에 편의점이 있어 가보니 비상구급약으로 급체에 먹는 약이 있어 사가지고 와서 미지근한 물로 먹였더니 처음에는 토해내시고 두번째는 간신히 삼키신다. 계속해서 화장실을 드나드시면서 무척 괴로워하신다. 약효가 없다.
9시가 되어 다시 약국으로 달려가 상태를 설명하고 약을 지어와서 먹였다. 점점 화장실가는 속도가 늘더니 이제는 수시로 들락날락인데 힘이 없으신데다 정신까지 혼미한지 힘들어 하신다. 침대에 누었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결국 어머니는 옷에다 일을 보고 말았다. 혼자서 옷을 갈아입겠다고 나를 보고 나가라고 하신다.
그동안 물을 데우고 주변을 정리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혼자 옷을 갈아입을려고 하시다 다시 일을 보고 급기야는 거기에 덜썩 주저앉아 난감해 하신다. 그 힘든 와중에도 자기가 혼자 하시겠다고 극구 말리신다. 급히 걸래를 찾아 방바닥을 훔치는데 냄새가 역겨워 구토를 할려고 한다. 간신히 참고 치우다 걸래로는 도저히 안되어서 어머니가 벗어놓은 바지로 치웠다. 바지를 치우려고 비닐봉지를 찾아 집어넣고 방에 들어갔더니 혼자서 기저귀를 갈아입으려고 안간힘인데 이젠 일어날 기력조차 없으신지 손만 내저으신다. 어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면서 화장실로 가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지현엄마에게 전화해서 같이 치라고 하신다.
아, 그때까지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 성천이에게 전화했더니 다행히 서울 집이란다. 빨리 오라고 하고 어머니를 화장실 변기에 앉히고 방바닥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난감하다. 병원엘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성천이가 왔다. 이미 어머니의 하반신은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둘이 간신히 부축해서 화장실로 가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하도록 했다. 그때까지도 본인이 혼자 하시겠다고 하신다. 욕조에서 물에 잠겨 있는 사이에도 또 배설을 하시어서 욕조물을 빼고 샤워기로 대충 씼고 모시고 나와 옷을 입혀드리고 성천이가 업고 내가 부축해서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이대부속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으로 가시면서 오물이 묻은 옷은 다 내다버리라고 하신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혈압을 제어보니 70으로 매우 낮게 나오자 간호사들이 기겁을 해서 중환응급실로 이송해서 혈압상승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준기에게 연락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응급실 의사가 와서 상황을 설명한다. 혈압상승제를 투여했는데도 80을 넘기지 못하고 있어 매우 위급한 상황이므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응급실에서 갈아입은 옷을 주는데 바지는 이미 오물로 가득해서 자기네가 버리겠다고 하고 윗도리만 주는데 여기에서도 냄새가 진동한다. 윗도리도 버렸다.
준기 내외가 왔다. 그렇게 사랑하던 손주내외가 왔는데 평소같으면 무척 귀여워 해줬을터인데..
3층 중환자실로 옮겨놓고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급체한 것으로만 여겨졌다. 어제밤에 그렇게 정정하셨으니까.
면회시간은 하루에 두번 12시~12시30분, 오후 5시~5시30분이다. 면회시간이 되어서 들어가 보니 다행히 의식은 말짱하다. 발음도 비교적 또렸하다. 중환자실에서 계속해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7시30분쯤에 도착했다. 간호사를 졸라서 면회가 되지 않는 것을 간신히 면회했다. 간호사가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할 테니 집에 가서 자고 내일 면회시간에 오라고 한다.
성천이 부부, 준기부부와 병원앞에 있는 동태탕집에서 동태탕을 먹고 헤어졌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 까지만 해도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간단히 씼고 잠을 잤다.
6/9(일)
새벽5시경에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중환자실이었다. 전화내용은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데 자꾸만 건드려서 손과 발을 묶어놨으니 그리 알라는 식이었다. 그래도 환자가 정신이 멀쩡한데 묶으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어쩔수가 없다고 한다. 이따 면회와서 놀랄까봐 미리 연락해주는 거란다. 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오전에 출근해서 일을 보시니 11시경에 오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해서 10시30분에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버님 생각이 나는게 병원에서 오래 걸릴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퇴원을 해도 오래 사시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오래 사실 것 같지 않으니 빨리 윤정이에게 전화를 하라고 독촉이다. 괜히 전화를 해서 부산하게 하는게 아닌가 싶어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다. 자다가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그렇다. 새벽4시란다. 위급하니 빨리오라고 했더니 울음소리가 들린다.
10시까지 기다리는 것이 길게 느껴진다.
9시경에 다시 전화가 왔다. 위급하니 급히 오란다. 성천이에게 연락하고 갔더니 어머니의 상태가 전혀 좋아지지 않아 투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승인 사인을 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배가 아프단다. 아내가 제주도에 가있는 녕기에게 전화를 해서 할머니가 위급하니 올라올 수 있으면 급히 오라고 했다.
10시경에 의사가 나와서 혈압은 올라가지 않고 호흡이 곤란하니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겠다고 하고 승인해달란다. 그래서 산소호흡기는 절대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돌아가신다고 나를 설득한다. 어머니는 평소에 산소호흡기와 수술은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씀을 하셨고, 착용한다고 해서 호전되는 것도 아닌 이상 산소호흡기와 수술은 안된다고 하였더니 의사가 알았다고 하면서 그러면 오늘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12시경에 면회를 했더니 상황이 답보상태다. 면회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있는데 2시경에 담당 주치의 선생께서 보호자를 찾아 복도로 나왔다. 중년의 여의사인데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이 노련해 보이는 것이 신뢰감이 든다.
산소호흡기와 수술을 원하지 않아 환자는 자정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니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해서 마지막으로 보도록 하라고 하면서, 그간의 상황을 설명한다.
CT촬영결과 장이 매우 팽창이 되어있어 내출혈이 있고, 복수가 차고 가스가 차있어서 아무리 혈압상승제를 투여해도 혈압이 올라가지 않고 있는 것이고, 혈압이 올라가지 않으니 혈액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콩팥에서 혈액을 거르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투석을 해서 새로운 피를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는데 호흡곤란이 심해지므로 자정을 넘기기 힘들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간호사에게 지시해놓을 테니 면회를 하고싶으면 자유롭게 하라고 한다.
머리가 아찔한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윤정이에게 연락을 해서 자정을 넘기기가 힘들거라고 전화했다. 그리고 의성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안는다. 그래서 집사람이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다. 외가로는 형진이에게 전화를 해서 외삼촌 이모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 사이 녕기가 와서 할머니를 붙잡고 오열한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의성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이 많이 취한 목소리다.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상황이니 지금 바로 올라오겠단다.
얼마후 의성이 가족이 왔고, 면회를 하면서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의성이가 대영이형과 인성이형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형진이가 왔다.
녕기가 여자친구를 대리고 와서 할머니를 보았단다. 아, 녕기가 아주 커다란 효도를 하는구나,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여자친구가 나한데 인사를 왔다. 요즘 애 답지 않게 차분한게 이쁘다.
11시경에 형진이가 외삼촌 내외를 모시고 다시 왔다.
어머니를 면회했다. 정신은 말짱한데 발음이 어눌한게 알아듣기 힘들다. 어머니께 막내딸이 지금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때까지도 배가 몹시 아프다고 하신다.
자정을 넘기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자정을 넘기셨다..
6/10(월)
새벽2시경에 성천이가 불경을 앺으로 다운받아 어머니 귀에 대었더니 편안해 하시는거 같다고 한다.
대기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의사가 와서 어머니가 곧 운명하실거 같다고 한다. 가서 보니 의식은 멀쩡한거 같다. 어머니 잘 가세요~ 어머니가 알아들으시는 거 같다. 고개를 끄덕일려고 하는거 같다.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방안을 적신다.
끝내 막내딸을 보지 못하고 운명한 시간이 7시40분.
윤정이는 8시10분쯤에 도착해 어머니를 부여잡고 통곡한다.
8시40분경에 막내이모와 신희이모가 왔다. 기영이가 모시고 왔다.
9시가 넘어서야 시신을 안치실로 이송했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여 접수를 하였는데 의성이가 모든 것을 다 솔선해서 해주었다. 고맙다.
장례식장은 지하1층 2호실, 80인실로 비교적 큰 편이다. 11시경에야 제대가 마련되었다.
대영이 형 내외분이 오시고 문상객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오시었다. 어머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다.
녕기 여자친구가 오늘도 문상을 왔다. 처음보는 사람들이라 어색하기도 할텐데 쑥쓰럽기도 할 텐데.. 요즘 애같아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차분한 성격인 거 같다. 마음에 쏙든다.
11시경에 강대룡이 왔다. 오늘 날씨가 무진장 더웠다고 한다.
전라도에서 상환형, 지환, 형환이가 왔다가 11시가 넘어서 갔다.
문상객이 끊기자 의성, 성천, 변서방, 녕기와 쏘맥을 몇잔씩 하고 잠을 잤다.
6/11(화)
9시에 입관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임동주가 왔다. 고맙다. 입관식에 걸린시간이 40분이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문상을 하고 갔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한산한거 같았는데, 저녁에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비가 아주 억수같이 쏱아졌다는데도 말이다.
아주 늦게 박대준이가 부산에서 왔다. 고속버스를 타고 왔는데 고맙기는 한데 부담스럽다. 오늘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영욱이와, 강일이와, 안성일과, 대준이와,..
저녁에 의성, 성천, 변서방, 녕기 이렇게 또 술을 먹고 잤다.
6/12(수)
6시30분 발인제, 7시30분 출발, 10시10분 운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 12시경에 분당메모리얼 파크에 안치후 점심, 3시경에 안양 비웅사에 위패(신위)와 영정을 안치, 5시경에 목동이대병원에 도착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표다.
발인제는 앞선집이 늦어지는 바람에 7시가 넘어서 했고, 7시50분경에 출발했다. 비가 내리는 것이 눈물같다. 출근시간이라 제시간에 대기가 힘들거라며 운전기사가 투덜댄다. 올림픽도로, 경부고속도로, 양재IC를 거치는데 많이도 밀린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에서 버스전용차선을 타는 바람에 9시20분경에 도착했고, 9시40분에 화장이 시작되었다. 11시10분경에 화장이 종료되었다.
12시경에 분당묘지에 도착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천막이 쳐져있었지만 작아서 우산을 써야했다.
점심은 갈비탕으로 하고 술을 몇잔 마셨다. 오랜만에 먹는 국물이라 시원하다.
안양 비웅사에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목동이대병원으로 돌아가서 옷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부의금을 정리했다. 녕기와 준기가 엑셀로 정리를 하는데 정말 빠르다. 젊음이 좋아보인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부의금을 똑같이 배분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채선당에 갔는데 9시가 넘어서 손님을 받지 않는단다. 10시까지 먹겠다고 하고 간신히 사부사부를 시켜 먹었다. 쏘맥을 몇잔 마시면서 오랜만에 형제들간에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화장실 변기가 고장나서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젠장~
6/13(목)
피곤하다. 녕기는 출근을 하고 나는 조금 더 쉬고 오후에나 나가야 겠다고 했는데, 아줌마가 오셨다. 아줌마가 깜짝 놀란다. 아줌마가 청소하는 동안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목욕을 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게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목욕을 끝내고 설렁탕집에서 설렁탕3인분을 사서들고 집으로 왔다. 셋이서 먹는데 음식이 식어서인지 맛이 덜하다.
목욕하는동안 아내는 어머니 방을 정리하고 통장을 찾은 모양이다. 잔돈푼만 있는 통장만 있고, 3천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줌마는 청소하고 아내는 은행을 왔다갔다하면서 바쁘다. 저녁도 먹고 산책도 하면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파리공원, 현대백화점, 대학학원까지 걸었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파라곤에 있는 순두부음식점에서 순두부를 먹었다.
먹고 집으로 오는데 아내가 어머니 통장에 1500만원이 없어졌는데 이를 절에다 갔다줬는지, 동생에게 줬는지 알수 없다고 한다.
그건 어머니 돈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했더니 화를 낸다. 나도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를 내고 따로따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참으로 한심하다. 둘이서 대통 싸움을 했다.
6/14(금)
오늘이 3.5제다.
산소에서 12시경에 만나기로 해서 10시30분경에 나갔다. 가는 동안 길이 많이 막혀서 간신히 12시경에 도착했다. 동생들은 오지 않았다.
12시 30분경에 동생들이 도착했는데, 햇빛이 너무 따갑다. 소극적으로 임하는 아내가 밉다.
제사를 간단히 지내고 우리가 먼저 내려왔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 중앙병원에 들러 아내의 약을 타가지고 왔다.
아내가 하는 말, 그 돈이 탐나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믿지 못한거 같아서 그게 서럽단다.
6/15(토)
아침을 먹는데 밥맛이 없다. 점심을 설렁탕집에가서 한그릇씩 먹었다.
오후에 화장실 변기와 샤워기를 고쳤는데 37만원을 달라고 한다. 깍을까 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이라 에따 먹어라하면서 현금으로 주니 얼굴이 활작 펴진다.
저녁에 처형이 손녀딸을 대리고 왔다. 여수에서 보낸 문어하고… 소주를 한잔했다.
6/16(일)
초제를 올리는 날이다.
우리 둘, 의성, 성천이 가족, 변서방과 경민이, 9명이 모였다. 제사가 무척 길다. 10시에 시작한게 11시30분에야 끝이 난다.
공양을 먹고 헤어졌다.
4시경에 성천이 부부가 왔다. 어머니의 3천만원짜리 통장이 집에 있어서 가지고 왔단다. 아내가 나를 그렇게 믿지 못했다는게 서럽다고 하고, 제수씨는 어머니가 부러 그러시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이해하라고 한다.
왜 그리 돈에 집착을 하는건지, 참으로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