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즐기기보다 만인에게 보여줄 별난 장면 담으려 위험 상황 초래… 정체성 확인받으려다 강박증까지
-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기존의 크고 무거운 카메라로 자기 모습을 촬영하려면 카메라 말고도 다른 장비들이 필요했다. 카메라를 사람 키 높이로 맞추고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 튼튼한 삼각대가 있어야 했고, 원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직접 셔터를 누르는 장치인 유선 혹은 무선 릴리스가 필요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카메라를 들고 우연히 거울 앞을 지날 때 정도나 자기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디지털카메라의 모니터가 촬영자가 직접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게 개발되었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런 카메라 기능이 휴대전화로 촬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만일 디카(디지털카메라)의 기능이 스마트폰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3억5000만장의 셀카 사진이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로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디카가 작아져도 디카는 카메라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식탁이나 침대로 가지는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 파티, 여행 등 특별한 순간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항상 손에 쥐고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유행하는 셀카 사진은 이런 폰카(휴대폰 카메라) 사진이기에 밥 먹는 사진이나 잠에서 덜 깬 모습과 같은 이상하고 독특한 사진들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등장한 셀카봉은 팔을 길게 늘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고 있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자기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셀프 모드로 바꾸면 사람들은 팔 길이 때문에 배경은 보이지 않고 얼굴 위주로만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셀카봉은 팔을 늘려 멀리까지 카메라를 보내서 시야를 넓힌다. 렌즈는 뒤로 갈수록 광각(廣角) 효과를 얻는다. 그래서 주변의 배경이나 옆 사람들까지 함께 프레임에 넣을 수 있다. 또 셀카봉을 어디로 들고 찍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는 내 모습까지 다르게 찍을 수 있다.
이 간편한 막대기는 사람들에게 이전에 촬영하던 셀카와는 또 다른 놀이를 제공했다. 셀카봉은 스마트폰이 확실히 사진 찍는 장난감으로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놀이 뒤엔 사진을 좀 더 예쁘게 나오도록 보정해주는 앱(App·Application의 약자)들이 있다. 또 방금 찍은 사진을 곧바로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거대한 전시장인 SNS가 있다.
찍을 땐 혼자지만 셀카 사진은 혼자 보기 위해 찍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facebook)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과 같은 SNS에서 사람들은 셀카 사진으로 전하는 친구의 안부를 알게 된다. 못 본 지 10년도 넘은 캐나다 밴쿠버의 초등학교 동창은 그가 즐겨 타는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주말마다 가는 곳을 SNS에 사진으로 올린다. 셀카로 매일 먹는 반찬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맛집을 찾아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면 이젠 숟갈을 들기 전에 감사의 기도 대신 셀카 사진을 찍고 SNS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풍광 좋은 산천을 찾아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과거엔 바위에 이름을 새기거나 낙서를 했다면 이젠 셀카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